음악 산책

슈만의 마지막 작품, 유령변주곡의 비밀

Wellingbird 2017. 10. 31. 13:49

로베르트 슈만의 마지막 작품, <유령변주곡(Geistervariationen)>



슈만이 쓴 마지막 작품이자, 평생 그를 유령처럼 괴롭힌 정신질환의 전조가 뚜렷이 드러난 의미심장한 작품입니다.


1854년 2월 27일, 슈만은 유령변주곡을 악보에 적어 마무리한 그날 라인강에 투신했습니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고, 1856년 숨을 거두기까지 정신병원에서 2년을 더 살았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고자 강에 뛰어든 그 날 이후로 로베르트 슈만이라는 사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병원에 있는 동안 그가 인격을 잃고 무너져가는 모습을 본 아내 클라라는 남편이 죽고 나서도 계속 이 곡의 존재를 숨겼습니다.


유령변주곡은 어떤 곡인가요. 선율은 아름답고,
악상은 차분하면서도 멜랑콜리합니다.

하지만 화성은 고음역으로 올라가려 하지 않고, 전조는 슈만답지 않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곡을 지배하는 수수께끼 같은 일렁임.


평론가 미셸 슈나이더는 이 곡이 음악적으로 별 가치가 없다는 뉘앙스로 말하지만, 그 점에 대해서는 조금 생각이 다릅니다.

어떤 종류의 아름다움을 담고 있는지는 들어본 사람마다 너무나 다양한 느낌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죠.

정신병원에 입원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그 전날 인생을 정리하며 쓴 마지막 작품...

이 '유령'이란 슬픔인지 고통인지, 아니면 모든 것을 초월한 아름다움인지... 그 마음을 누가 알 수 있었을까요.

 
'유령변주곡'이란 이름이 붙은 것은 환청과 환각에 시달리던 슈만이 '천사가 불러주는 음악'이라고 생각한 악상을 적은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이 아름다운 선율을 악보에 옮기고는 슈만은 드디어 모든 것을 끝내겠다는 생각으로 투신했습니다.


그런데 무섭고도 슬픈 것은, 사실 이 곡의 선율이란 1년 전 쓴 '바이올린 협주곡' 2악장의 주제 선율이었고,  12년 전 작곡한 현악4중주에도, 5년 전 작곡한 '어린이를 위한 앨범'에서도 똑같이 쓰였던 선율이었다는 겁니다.

슈만은 오랫동안 자신의 머리 속에 있었던, 자신이 만들어 낸 선율 때문에 웃고 또 고통받았지만 끝내 이를 깨닫지는 못했습니다.


원곡은 6곡으로 되어있지만, 헝가리의 피아노 거장 언드라시 쉬프가 연주한 마지막 제5변주입니다.

영상 속 슈만의 배경은 점점 짙은 녹색으로 변합니다.

다비드동맹무곡집의 2번곡 'Innig'의 그림자가 일렁이는 듯.